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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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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뼈를 묻을 각오로 가라
      내가 "공부"에 대한 재능이 많고 열정 또한 뜨겁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들고 "공부하기"에서 빛나는 성공을 하겠다는 포부를 흔들어 놓는 첫 충격은 GRE의 Verbal 영역이었다. 시험준비 자료가 풍부해진 요즘조차도 그리고 득점에 유리한 CBT 형식으로도 GRE는 매우 어려운 시험인데, 하물며 시험장에서 비로소 실제 GRE 문제를 처음 접할 수 있었던 80년대 초. 비영어권의 한국인 응시생이었던 나에게 PBT GRE는 완강하게 앞을 가로 막는, 실로 거대하고 깜깜한 난공 불락의 장벽과 같았다. 그리고 실제 GRE 문제를 처음 대면하게 된 첫 PBT GRE에서 받은 Verbal 410점은 이 사실을 나에게 확인해 주었다. 이 굴욕적인 410점에서 시작하여 대학원에 재학중인 1년간 3번의 PBT 응시에서 680점을 받기까지 겪었던 경험은 티벳인의 순례 여행인 오체투지가 연상되도록 처절하기까지 하였기 때문에 나는 GRE가 나의 "공부의 길"에서 마지막 고행일거라고 믿었다. 마침내 성취한 이 점수는 내 노력의 가슴 벅찬 결실이라고 생각하고 몹시 자랑스러워서 누가 GRE 점수 좀 물어봐 주기를 바라기도 하였는데 내가 다녔던 U of Chicago에서는 훨씬 더 좋은 점수의 한국학생도 있었고 PBT Verbal이 780점인 나의 미국인 친구 William도 있었다. 얼굴 위에 "공-부"라고 쓰인 그 친구는 30분에 38문항씩 두 개 section을 푸는 Verbal Section 76문항중 1개를 틀린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하였다. 이 친구조차도 GRE Verbal 점수는 열심히 공부한 결과였고 GRE Quant. 역시 매우 열심히 공부하여 680점을 받았다고 하니 내 GRE 점수 Verbal과 Quant.가 바뀐 셈이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GRE를 마치면 application 과정이 기다리고 있는데 입학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자료인 SOP를 작성하려고 머리를 짜내며 앉아 있다 보면 차라리 GRE가 쉬웠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GRE는 암기할 단어책과 풀어 볼 GRE 모의 문제라도 있지만 SOP는 온통 내 머리 안에서 구상해 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당시 여러 학교에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억할 만한 특이한 rejection도 없었지만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rejection letter의 길이와 내용은 여전히 사무적이며 매몰차다. 시험보다 더 초조하였던 admissions 통지 기간이 지나고 학교를 선택하게 되면 운명의 한 귀퉁이 정도는 결정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까지는 유학생들 대부분의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문제는 이제 시작하게 될 본격적인 미국 유학생활인데 이제부터의 경험은 각자가 다니게 될 학교와 전공할 공부와 자신의 성격 등에 따라 대단히 독특하고 개별적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 개별적인 경험들을 어떻게 극복하였는가는 유학에서 얻게 되는 성공의 내용을 결정하게 된다.

     첫째는 엄청난 분량의 공부이다. 대학원 과정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공부 수준은 예상을 훨씬 뛰어 넘는다. 더구나 언어적 약점을 안고 있는 유학생이라면 수업과 과제물, 중간고사, 기말고사 등의 공부량을 감당하기가 더욱 어렵다. 과목당 천여 페이지의 course pack과 단행본 교재들을 미리 읽고 들어 가도 수업은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었고 assignment, problem set은 과목당 2주에 한 개씩 제출하여야 하며 이 과제물들은 Mid-term(중간고사)와 Final(기말고사) 결과와 함께 그대로 최종 성적에 반영된다. 숙제 마감일 전날 밤을 꼬박 새워도 Problem set 문제는 풀리지 않고 Paper의 idea는 막혀 글은 아직 채워지지 않았는데 새벽의 동이 터오는 것을 볼 때면 자신의 학문적 소양에 대한 절망감으로 구토를 느낄 만큼 괴롭기도 하다. 하지만 다음날 Paper를 제출하고 잠깐 동안이지만 마음 가볍게 기숙사로 돌아 오는 길이면 마음을 고쳐 먹고 혼자 생각했다. "역시 나는 공부가 체질에 맞아". 이런 일을 수십번 견디면 한 학기가 간다.

공부를 즐겨라.
     공부는 즐거운 일이다. 공부와 잠깐이라도 떨어져서 다른 일을 해 본적이 있다면 누구나 느끼게 되는 감회이다. 이미 이 진실을 몸소 터득하고 다시 공부의 길로 들어 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유학이 제 아무리 힘들어도 군대 보다는 훨씬 낫다. 군대 생활이 편안했던 사람이라면 여기에 해당하지 않겠지만 설사 군대보다 유학이 고생스럽다 하더라도 일생을 살며 유학 가서 죽을 만큼 고생 한번 해 보는 것도 살아 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 지금 아니면 언제 해 보겠는가.

     모든 과제물은 반드시 시간내에 제출할 수 있도록 미루지 말고 시간표대로 진행하라. deadline 전날 밤을 세우지 않고 미리 작성해 제출해 보려 하였으나 그런 기억이 별로 없다. "이 세상에서 서둘러 나오지 않은 명문은 없다"고 하지만 deadline에 쫓겨 서둘러 나온 "A+" paper도 역시 많지 않았다. 매일 읽을 article은 정해진 분량을 하루도 거르지 말고 반드시 당일에 해결하여야 한다. 다니게 될 학교의 curriculum을 출국전에 미리 살펴보고 교재와 article을 한국에서 읽어 가게 되면 적응에 큰 도움이 되고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 좋은 성적을 받는 데 유리하다. 평소의 풍부한 독서와 사색이야말로 깊은 통찰력과 훌륭한 글쓰기 소재이다. 평생을 공부로 살 생각을 하고 있다면 男兒須讀五車書(남아수독 오거서)가 아니더라도 5000권의 책을 읽은 후 5000번의 사색을 통해 얻은 혜안으로 50권의 책은 써야 하지 않을까.


끝없이 준비하라.

TV를 1시간씩만 보아라.
     영어에 익숙해져서 수업과 발표, 토론 등에 최소한의 자신감이 생기기까지는 매일 한 시간씩 TV  보기를 권한다. 규칙적으로 집중하며 보아야 하고 1시간 이상을 넘겨서도 안된다. TV 시청은 만화에서부터 드라마, 토크쇼, 코미디로 순서로 옮겨 가는데 이러한 연습은 한국에서 일찍 시작할수록 좋다. 한국어를 이미 익힌 초등학교 시절 이후에 미국으로 이민간 1.5세로 영어에 매우 능숙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TV를 통해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영어를 습득하였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틀림없이 가장 좋은 영어 학습방법이라고 믿는다. 이런 노력을 충실한 수업과 병행한다면 첫 수업 이해 비율을 0%로 가정하고 1년 후 50% 이상의 이해율을 보장한다. 사실 50% 이해율이면 수업중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이해하며 앉아 있게 된다. 더불어 discussion에서 강제 지적을 받지 않을 만큼의 참여도 향상도 기대할 수 있다.

한국에서 영어 학습
   영어 듣기는 모든 영어 학습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듣기는 특히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영어 말하기의 기본 전제가 된다. 한국에서 듣기 연습은 자막 없는 영화 보기가 가장 훌륭한 교재이다. 같은 영화를 몇번 반복해 보는 일은 사실 영화 감상이라기 보다 지루한 영어 공부가 되겠지만 듣기와 말하기 연습으로는 더 좋은 교재는 없다. 영화로 영어 공부를 할 때는 다음 순서를 따르기를 권한다.
   첫째, 학습자들 대부분이 영화 안의 상세한 대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단계에서 시작하므로 우선 영화의 story 전개만 따라가는데 집중하며 한번을 본다. 만약 이야기가 어떻게 구성되는가만 이해하였다면 첫번째는 성공이다. 두번째는 이미 이해한 story를 바탕으로 어떤 대화가 전개되는지에 집중한다. 영화에는 기막히게 기발한 영어적 표현이 많은데 메모까지 할 수 있으면 더욱 좋다. 그리고 특별한 인내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세번 이상 같은 영화를 영어 공부하기 위해서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다른 영화로 옮겨 가는 것도 괜찮다. 영화의 대사중에는 연기를 위해 불분명한 엑센트와 발음을 구사하는 경우가 많아 듣기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혹은 힛치코크 영화에서 처럼 마른 나무가지가 부러지는 듯이 똑똑 끊기는 엑센트로 빠르게 말하는 영화도 듣기에 거북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런 점에서 형사 콜롬보와 같은 TV 시리즈물이 분명한 발음 때문에 듣기 영어 학습에 흥미를 잃지 않게 하는 좋은 교재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이렇게 영화를 통한 듣기 공부는 자연스럽게 말하기 공부도 된다. 이것 역시 사실이다. 영화 보기를 계속하면 의도적인 노력이 없었는데도 대사중의 말들이 그대로 혹은 응용이 되어 저절로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 나온다.  참고로 덧붙이면 읽기 공부를 위해서는 다독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고 특히 영어 소설 읽기는 믾은 재미도 느끼게 되는 읽기 공부이므로 실천하기를 권한다. 찰스 디킨스나 오스카 와일드 그리고 제임스 조이스와 같은 고전을 포함하여 10권 이상을 읽으면 영어책 읽기에 숨겨진 재미를 찾아 내게 되고 읽기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    

미국 신문을 매일 읽어라
     한국에 대한 향수를 달래는 데는 한국 음식과 함께 한국에서 오는 비디오물과 현지에서 발행되는 한국신문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미국에서 유학 생활에 별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 이 매체들을 읽거나 보는 시간에 대신 Washington Post나 New York Times, Chicago Tribune 등의 무료 인터넷 신문을 프린트하여 아침을 먹으며 혹은 화장실에서 매일 읽으라. 영어 공부는 물론이고 미국인 친구와의 대화에도 도움이 되고 미국의 시사 문제에도 보조를 맞출 수 있다. 기왕 미국에 유학한다면 미국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도 좋다. 미국의 잡다한 일상사에 관심을 갖게 될 때쯤 되면 미식축구의 규칙을 알게 되고 그래서 미식축구를 재미있어 하지 않나 싶다. (그런데도 나에게는 아직도 미식 축구는 재미없는 운동경기이다)


미국에서는 미국인처럼 행동하라
     한국인은 한국적인 것에 대한 향수가 동양 3국의 다른 동양인에 비교하여 보아도 특히 더 큰 듯하다. 한국에 대한 향수를 버려라. 한국에 대한 향수를 가장 자극하는 것은 한국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고 그래서 향수를 가장 쉽게 충족시키는 방법도 한국 음식이다. 하지만 한국 음식을 먹기 위해 애쓰지 말라. 쉽게 구할 수 있는 음식으로 허기만 면하고 체력만 유지하도록 하라. 한국 음식에 대한 향수는 한국에 대한 향수와 함께 독하게 버려라. 한국에 돌아오면 미국에서는 그토록 지겨웠던 기숙사의 미국 음식들이 자주 그리워 진다. 미국에서는 미국 음식을 즐겨라.

     미국인 친구를 사귀어라. 유학중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고 평생의 훌륭한 벗이 될 수 있는 미국인은 많다. 함께 공부하는 미국인들을 경시할 일도 그렇다고 두려워할 일도 아니다. 재능도 뛰어 나고 성품도 온화한 좋은 경쟁자들이 많다. 그들에게서도 배워올 점도 많다. 이것도 유학에서 얻을 수 있는 큰 이익이다.

건강을 유지하라
     유학생들은 아직 젊은 나이여서인지 과로에 의해 건강을 상하는 일이 드물다. 하지만 감기와 몸살, 두통, 미열 등의 가벼운 질환은 자주 유학생들을 괴롭히고 그럴 때면 타이레롤이 만병통치약이 돼주었다. 특히 기숙사와 같은 집단 주거지에 거주한다면 독감과 같은 전염병에 감염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일단 병에 걸리더라도 다른 사람의 많은 도움을 기대할 수 없고 자신이 혼자 이겨내야 한다. 모두 자신들의 일로 바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가끔 일어나기도 한다. 함께 기숙사에 거주하며 매일 보던 한 후배가 한동안 보이지 않았지만 무심코 지냈다. 얼마 만에 해쓱해져 사람들 앞에 나타난 그 후배는 아무도 찾아 오지 않는 기숙사 방에서 2주를 혼자 심하게 아팠다고 말하였다. 모두 미안해 하였지만 알았다 하더라도 누군들 어떻게 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마침 그 때가 시험 기간중이었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절제와 운동과 영양이 필요하다.

담배는 한국에서 끊고 가라
     건강을 유지 하기 위해서는 담배를 먼저 끊으라. 미국에 가서 끊기는 더욱 어려워지므로 한국에서 끊고 가라.

술을 좋아한다면 조금만 마셔라
     술은 항상 물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특히 독신의 유학생들에게 술은 향수와 외로움과 공부의 중압감을 잠시 잊게 해주는 ecstasy이다. 그래서 과음하기 쉽다. 과음은 후유증을 남긴다. 절제에 대한 책임은 자신의 몫이다.

규칙적인 운동을 하라
     influenza와 같은 전염병이 유행할 때도 운동을 즐겨 하던 사람들은 무사히 잘 넘겼다. 체육관은 학교 안에 잘 분산되어 있고 시설도 충분하여 언제든 사용할 수 있다. 운동을 즐기는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이 없다면 혼자서 jogging과 weightlifting을 규칙적으로 땀을 흘릴 만큼 하라.

     영양은 걱정할 바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불균형한 과잉 영양 공급이 문제이다. 그래서 배 나온 유학생이 많다. 운동 부족도 그 원인이다. 복부비만은 보기에도 흉하지만 건강에도 위험한 징후라고 한다.

財源은 반드시 대책을 세워 두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몹시 뻔뻔해져라.
     유학에 필요한 비용은 모두에게 공통의 걱정거리이면서 가장 무거운 고민이다. 사실 돈만 있다면 공부 정도야 남 하는 것만큼 못하겠는가. 그래서 미리 이 고민을 해결해 두고 공부에만 열중할 수 있다면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유학 전에 재원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지 못하였다면 막연히 해결되리라 낙관하지 말되 그렇다고 포기하여서도 안 된다. 일단 미국에 가서 억척스럽게 덤벼들어라. 여기에 점잖은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돈 문제는 체면을 버리고 뻔뻔스럽게 달려들어야 해결이 된다. 미국에서 만난 후배와 내 자신의 경험은 뻔뻔스러움이 얼마나 큰 미덕인지 잘 말해주는 일화이다. 그 후배와 나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가난한 유학생이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 후배와 나를 구분하게 하는 큰 차이가 있다. 그 후배의 뻔뻔함과 강한 생존 본능이 내게는 없었다. 그 후배는 유학을 오면서 집에서 편도 비행기표와 약간의 비상금을 주었다. 미국에 온 이후 집에서 1달러도 받아 본적이 없다. 이 후배가 석사과정을 공부할 때는 RA를 잡을 수가 없어서 음식값이 비싸 tip 수입이 적잖은 American Chinese Restaurant에서 웨이터를 비롯한 잡역으로 생계를 꾸리며 학비를 해결하고 2년을 절약하며 저축한 돈으로 3000달러 하는 중고 승용차도 샀다. 박사 과정에 들어가자 RA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데 유학생들은 1주일에 20시간 이상의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시간당 급료가 생계유지가 될 만한 RA 자리를 구하기 위해 교수들을 찾아 다니더니 시간당 12달러짜리 일자리를 구해 학비와 안정적인 생활비가 동시에 해결되었다. 당시 한 달에 960불이면 충분하지는 않지만 생활은 가능할 액수였다. 그 후배는 박사 과정중 참하디 참한 교포 학부생과 열애 끝에 결혼에 성공하였고 박사학위를 받은 후 원하던 대로 모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으니 성공적인 유학생활이 많은 것을 한꺼번에 해결해 준 셈이다.

     필자가 유학하였던 학교는 quarter system의 학기 제도로 당시의 등록금이 1개 quarter에 $4,000 였으니 1년에 3개 quarter로 $12,000의 등록금이 필요하였다. 입학시 1개 quarter당 절반의 등록금 면제를 받았으므로 나머지 $2,000의 등록금은 내가 해결을 하여야 했다. 물론 이 등록금을 낼 수 없었고 bursar's office에서 서면으로 몇 번의 독촉을 받았을 뿐 별 조치는 받지 않고 몇학기째 지나고 있었다. 항상 등록금이 마음에 걸렸으나 나서서 해결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은 채로 요행만 바라고 있었다.

     대학원에는 학과마다 Student Dean이라는 직책이 있다. 이 직책은 Academic Dean과는 구분되어 학생들의 신변에 관한 일을 담당한다. 당연하게도 Student Dean에게 나의 미등록 상황은 통보가 되었을 터이다. 당시 40대의 품위있는 외모를 가진 우리 과의 Student Dean인 Nancy O'Cornor는 student lounge에 있는 나의 개인 mailbox에 쪽지 하나를 끼워놓았다. 그 첫번째 쪽지를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하나 대강 이런 단어를 사용한 다음과 같은 요지의 내용이었다.

Hello. Mr Choe. I am afraid you have some bad problem.
Please sign up at your convenience to tell me about it.

     나는 그녀가 말하는 심각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쉽게 알아 차렸고 잠깐 망설인 후 곧 그 쪽지를 무시해버렸다. 등록금의 문제로 구차한 추궁을 받지 않을까 하는 나의 고질적인 소심함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음 주쯤 mailbox에서 다시 발견된 유사한 내용의 두번째 쪽지도 같은 이유로 무시하였다. 그러던 내가 그녀를 만나기 위해 사무실로 찾아 간 것은 나와 만나기를 재촉하는 세번째 쪽지를 받고서도 주말 전날까지 며칠을 더 고민한 후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고 판단해서였다.

     나를 맞은 그녀는 왜 그 동안 몇 번의 message에도 불구하고 이제서야 왔는지를 먼저 책망하듯 물었다. 그리고 나서 成積에 관한 질문을 포함하여 몇 가지를 더 물은 후 사정을 짐작한 이 교양있고 아름다운 백인 여성은 소심한 동양의 청년을 앞에 두고 꽤 긴 훈계를 시작하였다.

     "네가 도움이 필요하다면 네가 먼저 도움을 청하여야 한다. 너는 세번째 쪽지를 받고서야 나를 만났다. 미국은 도와 달라고 하면 반드시 도와 준다. 그러나 도와 달라고 하지 않은 사람을 먼저 나서서 도와 주지는 않는다. 우리 학교는 공부만 잘 한다면 너를 돈 때문에 학교를 그만 두게 하지는 않는다."

     나는 하마터면 그녀 앞에서 눈물이 나올 뻔 하였고 감정에 흔들려 잠기게 된 목소리로 고맙다고 짧게 대답하였다. 이야기를 마친 그녀는 다시 한번 쪽지 위에 몇 문장의 글을 쓰더니 Office of International Students로부터 등록금과 함께 얼마간의 생활비를 받도록 주선해 주었다. 아마 그녀가 아니었더라면 나의 소심함과 근거없이 무책임한 낙천성이 더욱 나쁜 방향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언젠가 그녀를 다시 만나 그때 일을 감사할 수 있게 되기 바란다. 그녀도 벌써 60이 넘어 많이 늙었겠지만 아마 곱게 나이 들어 있을 것이다.

     이제 유학을 떠나는 학생들에게 다시 한번 당부한다. 일단 작정을 하였다면 절대 포기하지 말라. 안이하게 다른 요행을 기대하지도 말라. 성공하지 못하면 돌아 오지 않고 그곳에 뼈를 묻겠다는 각오로 이를 악물고 떠나라.

명심하라.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기회는 사라지기 쉬운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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